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매케인 (문단 편집) === 정치 경력 === || [youtube(NvgqRKYapU8)] || || 2008년 대선 패배를 승복하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모습 || [[1982년]] 중간 선거에서 현역의원이 정계를 은퇴하면서 공백이 생긴 [[애리조나]] 주 제1선거구에서 연방하원 공화당 후보로 출마, 지역의 보수성향과 개인적인 전쟁영웅 이미지로 무난히 당선되었다. 이후 [[1984년]]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고, [[1986년]]에는 애리조나의 상원의원 중 한 명인 [[배리 골드워터]]가 정계은퇴하면서 그 지역구에 출마해 정계입문 4년만에 상원의원이 되었다. [[공화당(미국)|공화당]]내에서 중도 성향의 아웃사이더[* [[1997년]] 3월 13일 미국 및 [[멕시코]] 국경에서 목격된 괴이한 불빛(이른바 피닉스 라이트 사건) 정체를 두고 진상파악을 요구하던 인물이기도 하다. [[UFO]]라는 음모이론보단 [[미군]] 비밀무기 및 아니면 무슨 훈련 사항이 아니냐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가장 딴지를 걸던 [[정치인]]으로 이 당시 공화당에서도 넘어가자는 것을 고집스럽게 1년 넘게 따져들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음모이론을 조장하며 미군의 불신을 조장한다고 엄청 비난했다.]였던 인물로 워싱턴 정계에서는 '1년에 절반은 민주당과 싸웠고 나머지 절반은 공화당과 싸웠던 사람'이란 평가를 받았다. [[2000년]] [[미국 대통령|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에 출마하여 초반엔 나름 선전했으나, 당시 유력했던 [[조지 W. 부시]] 캠프발 흑색선전[* 매케인은 흑인 고아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고 있었는데, 부시 진영에서 이 아이가 [[사생아]]라는 근거없는 선전을 해댔다.]으로 인해 지지율이 폭락하고 자금력에서도 밀리면서 경선 중반에 결국 패배를 시인하고 경선을 중도 포기했다. 이후 아들 부시 정권 8년 동안 백악관과 각을 세우면서 정권의 실정을 집요하게 공격했기 때문에 이라크전의 난맥상과 금융위기로 공화당이 무너져 내릴때 오히려 반사이익을 보면서 보수층 일부와 중도부동층 사이에서 지지도를 크게 끌어올렸다.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경선은 무난하게 통과했지만, 본선을 앞두고는 당시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오바마에 심각하게 뒤지고 있던 여성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중앙정계에서는 완전무명이었던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지명했다가 완전히 망했다. 골수 지지층들의 지지는 얻을 수 있었지만 그녀의 잦은 병크로 몇주 지나지 않아 도리어 마이너스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았다고 해도 승리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물론 페일린을 지명한 직후 얼마간 오바마보다 지지도가 조금 앞섰다. '''[[흑인]] [[미국 대통령|대통령]]''' 신드롬을 '첫 여성 부통령' 후보로 오바마에게 갈 표를 어느 정도 자기쪽으로 끌어들이며[* 첫 여성 대통령을 노리고 있던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던 주부들의 표.] 잠재우려 했다. 하지만 페일린 자체가 승부수였던지라 공화당에서도 그런 [[신비주의]]와 신선함을 밀려고 했지만[* 사실 극초반에는 확실히 효과를 봤었다. 페일린은 이미 대세로 자리잡은 오바마와(정확히 말하면 대세로 자리잡은 '''민주당''' 후보였다. 이때는 부시가 워낙 지지를 깎아먹은지라 웬만한 바보가 아니고서야 민주당 후보가 되는 시기였다.) 대비되는 뉴페이스였는데, 일반인 여성들의 공감을 얻은 "사커맘" 포지셔닝이 효과를 발휘해 여성표를 많이 얻었고 이 때문에 역전은 못했었지만 매케인과 오바마의 격차가 해볼만한 수준으로 줄어든 적도 있었다. 한때 페일린의 인기가 매케인을 묻어버릴 정도였으니, 대선에서 패배해도 페일린이 일반 정치인 수준의 상식과 능력만 있었다면 꽤나 거물로 성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꼭 이런 것뿐만 아니라 매케인의 공화당 내에서 진보적인 성향으로 보수주의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것도 큰 원인이었다. 후보로 확정되고 나서도 보수 진영 인사 여러명이 매케인을 지지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적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아무래도 보수표는 백인쪽에 많기 마련인데 매케인이 2008년 대선에서 백인들에게 55%밖에 득표 못한 것도(롬니도 59%는 얻었다) 그와 무관치 않았던듯. 그의 진보, 중도적인 성향은 상대 민주당 후보가 당내 보수파였다면 중도층을 상대로 통했을 지도 모르나 상대는 젊은 뉴페이스 진보 오바마였다. 즉 어중간한 포지션으로 보수표도 잃고 중도표도 잃으며 완패했다. || [[파일:2212.png|width=100%]] || || [[버락 오바마]]와의 지지율 그래프 || 사실 2008년 대선에서 여성만 따로 보면 매케인의 득표율은 43% 오바마는 56%였다(남성은 매케인 48%, 오바마 46%). 2012년 대선에서 남자 폴 라이언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롬니는 여성 득표율이 44%였다(남성은 롬니 52%, 오바마 45%). 여성 득표율이 2012년 롬니보다도 1%가 더 낮다. 즉, 매케인은 여성인 사라 페일린을 런닝메이트로 올려서 얻은건 없고 오히려 손해만 봤다. 이미 망한 전력이 있는 (여성표, 남성표 모두 손해) 사라 페일린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또다시 공화당 러닝메이트로 거론된다는 것이 미스테리. 2015년 7월에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그(존 매케인)는 전쟁영웅이 아닙니다. 그는 적군에게 잡혔기 때문에 전쟁영웅이 된 거에요. 난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좋습니다."라고 비난을 받았기도 하였다. 어쨌든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선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지명된 다음에는 잠시 지지를 선언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녹취록이 공개되자 지지철회를 선언하였다. [[힐러리 클린턴]]에게는 투표하지 않을 것이지만 도널드 트럼프에게도 투표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것이 트럼프에게 어느정도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지만, 결국 트럼프가 힐러리를 이기고 당선되면서 트럼프 열풍을 막기엔 부족했다는 것이 방증되었다. 하지만 몇년이 지나고, 매케인이 사망한 이후에 열린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다. 매케인의 지역구였던 애리조나 주의 주민들이 트럼프를 마땅치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상대 후보로 나온 [[조 바이든]]은 민주당 후보지만 매케인과 막역한 사이였으며[* 매케인의 마지막 부탁 2가지는 [[도널드 트럼프]]를 장례식에 부르지 말 것, 그리고 '''[[조 바이든]]이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정치를 계속해 줄 것]]'''이었다.] 매케인 사망시 정성을 다해 헌사를 바쳤던 사람이었다.[* 바이든뿐만 아니라 그의 대선 경쟁 상대였던 버락 오바마도 장례식에 참여하여 매케인을 기리는 장문의 정성을 다한 추도문을 바쳤다. 어떻게 보면 공화당보다 상대당이었던 민주당이 더 안타까워하며 정성을 다했다고도 할 수 있다.] 존 매케인의 부인[* 공화당원으로, 바이든을 뽑는다는 기고문의 제목도 "공화당원이 바이든에 투표하는 이유" 였다.]마저 공개적으로 조 바이든을 지지한다고 밝히며 바이든 지지를 호소했다. 그 결과, 애리조나주에서는 바이든이 1%미만의 득표율 차이로 승리하였는데, 애리조나 주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가 이긴 것은 1996년 이후 처음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